로리타의 사랑법

봄을 실은 마차소리가 들리는 2월엔 어느 달보다 떠나가는 노인이 많습니다. 곧 시작될 사계(四季)의 새로운 순환이 버겁게 느껴지는 걸까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신, 즉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돌아가신 16일, 멀리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선 마리아 돌로레스 탈라베라 여사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93년 삶의 궤적을 볼 때 여사 또한 선종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로리타 안 (Lolita Talavera)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여사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1906~1965) 선생의 부인입니다. 여사의 부음을 접하니 제일 먼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46년 안 선생과 결혼해 돌아가실 때까지 한국인이었던 여사에게 우리가 해드린 게 너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선생 생전엔 늘 남편 뒤에 서고, 돌아가시는 날엔 김 추기경 뒤에 가리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스페인 백작의 딸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여사는 선생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한국, 일본, 미국에서 바이올린, 트럼펫, 첼로 등 악기와 작곡법, 지휘법을 배운 후 1936년부터 유럽에서 활동하던 선생을 여사가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중 선생이 스페인으로 피난을 갔고 마침내 두 사람은 1946년 7월 5일 부부가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결혼한 후 마요르카에 정착했고, 선생이 마요르카 오케스트라 (선생이 창설했다는 설도 있습니다.)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1965년 9월 16일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 살았습니다.

여사의 별세를 전하는 국내 언론은 모두 여사가 남편을 지극히도 사랑하여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도 ‘내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2년 여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맞추어 쓴 일간스포츠 김인규 기자의 기사를 보면 ‘내내’라는 부사를 쓰기 민망한 사연이 있습니다. 김 기자의 기사 ‘초대받지 못한 애국가의 미망인’ 일부를 옮겨봅니다.




로리타 안 여사 그리고 딸과 외손자. 사진제공/연합뉴스


“마요르카시는 한국에서 온 위대한 예술가를 숭모, 시가지 한 곳을 ‘안익태 거리’로 명명했으며 매년 추모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어여뻤던 신부 로리타는 이제 73세의 할머니가 되어 혼자서 부군 안익태를 생각하며 함께 살았던 집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의 조그만 섬도시가 먼 동양에서 건너온 예술가를 존경하고 지금도 그의 위대성을 아끼는 것과는 달리 정작 애국가 작곡가의 고국인 한국은 그를 너무나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에, 숨진 남편의 나라 선수들과 임원들, 숱한 관광객, 정부 인사들이 몰아닥쳤으나 누구하나 찾아주는 이 없고, 부군이 작곡한 애국가가 바르셀로나에서 수많은 국가를 제치고 가장 먼저 연주됐음에도, 또한 앞으로 계속 연주될 것임에도, 초청해주는 이 하나 없는 현실이 어떠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남편과 남편의 조국을 사랑했기에 부군이 숨진 뒤에도 24년간이나 한국 국적을 유지해오다 생활비가 부족, 연금을 탈 단순한 목적으로 지난 89년 스페인국적을 재취득하게 됐을 때 로리타 할머니에게 대한민국은 어떻게 비쳤을까...”

기사엔 또 여사가 한때 집세를 내지 못해 선생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야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는 얘기,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곳 교민 실업가 권영호씨가 1990년 11월, 그 집을 11만 달러에 사서 여사가 마음 놓고 거주할 수 있도록 조치한 후 그 집을 ‘안익태 기념관’으로 조성하여 한국정부에 기증할 뜻을 밝혔으나 정부가 기념관의 관리비를 부담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는 것, 그리하여 기념관 조성사업은 물론 집 소유문제도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김 기자의 기사가 게재된 뒤, 한국일보는 국민성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외교통상부와 안익태 기념재단설립을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해 10월엔 권영호씨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되었고, 이어서 ‘안익태 기념사업재단’의 창립총회도 열렸습니다. 2001년 2월, ‘안익태 기념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재단은 매달 여사의 생계보조비로 천오백 불, 유가(遺家) 관리비로 천 불을 지급해왔으며 매년 9월 16일엔 선생을 위한 추모식을 열고 기념음악회도 개최해왔습니다.

여사는 1972년 안 선생의 일대기 ‘나의 남편 안익태’를 펴냈으며, 2005년엔 한국을 방문해 “애국가는 한국의 것이고 우리 가족은 한국인이므로 저작권은 한국 국민에게 있다”며 무상으로 한국 정부에 애국가의 저작권을 양도했습니다. 또 교향시 ‘마요르카,’ ‘포르멘토르의 소나무’ 등 미공개 악보를 포함한 모든 악보와 선생 관련 자료를 안익태기념재단에 넘겼습니다.

여사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건 2006년 12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하셨을 때라고 합니다. ‘마요르카’의 한국 초연을 지켜본 후 지갑 속에서 빛바랜 남편의 얼굴사진을 꺼내어 한국일보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한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훌륭한 음악가였고 무엇보다 조국을 사랑했다. 남편이 그랬듯 우리도 늘 한국을 그리워한다.”

두 분이 함께 산 기간은 겨우 19년, 여사는 그 후 44년을 혼자 살았지만 남편과 남편의 조국을 향한 사랑은 한결 같았습니다. 여사가 선생을 잊을 수 없었던 건 어쩜 선생이 여사를 위해 작곡한 가곡 ‘흰 백합화’와 그 악보에 친필로 써놓은 부탁 --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나를 기억해주오 --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렇담 여사의 끝없는 한국사랑은 어디에 기인할까요? 진정한 사랑은 자라는 거라지만 보답 못한 사랑은 받은 사람을 부끄럽게 합니다.

여사의 부음 기사엔 안익태기념재단 이사인 한나라당 전국위원회 부의장 신현태씨가 영결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출국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적어도 재단의 이사장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총리는 몰라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도는 현지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게 옳지 않으냐고 하면 제가 지나친 걸까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사랑을 갚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는 우리나라, 오늘 더욱 부끄럽습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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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17:02 2009/02/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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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날씨도 사람을 닮는다더니 안개 낀 서울은 자꾸 어두워지는 마음을 닮았습니다. 이런 날 집에 있으면 아주 눕게 됩니다. 마침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함석헌 선생 서거 20주기와 마하트마 간디 서거 61주기를 추모하는 학술모임이 열린다니 그리로 향합니다.

버스는 철거와 재개발이 한창인 가재울 뉴타운을 지나갑니다. 대낮인데도 굳게 닫친 셔터엔 검고 붉은 스프레이로 그린 X자가 무섭고, 뜯기다 만 벽, 유리창이 사라진 건물들이 퀭한 눈으로 서 있는 한쪽에선 작은 가게들이 아직 영업 중입니다. 자연히 용산 철거민 참사의 희생자들과 검은 치마저고리 차림의 유족들이 떠오릅니다.

1966년 ‘사상계’ 3월호 권두에 “항거할 줄 알면 사람이요, 억눌러도 반항할 줄 모르면 사람 아니다. 그리고 혼자서 하는 항거는 참 항거가 아니요, 대중이 조직적으로 해서만 역사를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끄는 참 항거이다.”라고 썼던 함석헌 선생이 오늘 서울에 계셨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간디처럼 비폭력 저항을 주창하여 ‘한국의 간디’로 불리던 분이니 화염병을 던지진 않으셨을까요? 우리 나이 19세에 3.1 운동에 참여한 이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지칠 줄 모르고 저항하다 투옥을 일삼던 분이니 가만히 계시진 않았겠지요?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군 바닷가 원성목에서 태어나 1989년 2월 4일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함 선생과 1869년 10월 2일 인도 서부 해안의 포르반다르 (Porbandar)에서 태어나 1948년 1월 30일에 암살을 당한 간디, 두 선인들은 출생지가 바닷가라는 공통점 외에도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에서 닮은 점이 많습니다. 그 닮은 점이 오늘 모임의 주제일 겁니다.

모임이 열리는 지하1층 대강당, 벽을 따라 서있는 책꽂이의 빼곡한 책들 중에서도 김병희 편저 ‘씨알소리소리 함석헌’이 눈을 끕니다. 아시다시피 곡식의 낟알이나 과일, 생선 등의 크기를 뜻하던 ‘씨알’이란 말이 함 선생 덕에 백성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함 선생은 ‘씨알’의 ‘알’자를 쓸 때 ‘ㅇ’ 아래에 마침표를 찍은 ‘아래 아’를 쓰셨지만 컴퓨터 자판엔 ‘아래 아’가 없어 그냥 ‘씨알’로 표기해야 하니 안타깝습니다.



뜯기고 헐린 잔해들이 쌓인 철거현장. 사진제공/연합뉴스


무심코 펼쳤는데 하필 글 쓰는 사람들을 향한 일갈입니다. “隔靴搔癢(격화소양)이라, 신 위를 긁는다는 말이 있다... 요새 글 쓰는 사람들 보면 어찌 그리 신은 것이 많은가? 양말 신고 구두 신고 덧구두 신고 그 위를 긁는 것 같은 글뿐이다. 그러면 시원하긴 고사하고 더 가려워. 예배당 절간에 아니 가려는 것이 웬 까닭인지 몰라? 신문 잡지 보다가 내팽개치는 것이 무슨 때문인지 몰라? ... 이 씨알의 가려운데 말 못할 속의 가려운 데를 시원히 긁어 노래가 나오게 할 예술가 평론가는 아니 오려나? 신을 좀 벗으려므나?”

선생은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조롱을 아끼지 않습니다. “글이라고 쓸 때는 있는 맘껏 다해 쓰노라 하여도 써놓고 보면 이거 내 소리냐? 하고 찢어버리고 싶지 않은 글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역시 이날껏 글 쓰고, 찢지 않고, 돈 받는 것이 나의 나밖에 못되는 설움이 있는 것이다. 감옥에서 나와서는 또 도둑질을 하는 상습범,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는 또 민중의 피 빨아먹는 살림을 다시 하고 다시 하는 성당 예배당 절이라는 감옥에 있는 상습범, 신문 잡지를 보고는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또 나라의 것을 도둑질해 먹는 정부관청이라는 엄지 감옥에 있는 상습범, 그것들도 나 같아서 그러겠지. 너나 나나 가엾은 존재들이로구나!”

선생의 힐난이 부끄러워 슬며시 책을 덮습니다. 연단에선 논문 발표가 한창입니다. 이치석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은, 선생은 학교체제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면 부정하셨으니 공교육 혁명가라며 함석헌전집 2권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졸업장이 있어야 출세한다는 사회제도 때문에 학교가 있는 것이지, 결코 학교가 아니고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이지 학교가 아니다. 거기서는 아동이라는 원료를 넣고 교사라는 기술직공이 교수라는 기계작업을 하면 다수의 제품이 나온다. 그러면 일정한 자격이 있어서 거기 맞으면 상품으로 나가고 맞지 않는 것은 아낌없이 내버림을 당한다. 공장주는 채산이 목적이지 그 개체의 운명은 문제로 삼지 않는다.” 50년 전 말씀이 오늘에 더 잘 맞는 것 같으니 비감합니다. 젊은이들이 들으면 환호할 테지만 젊은 얼굴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법무법인 민중의 박종강 변호사가 전해주는 간디의 “내가 꿈꾸는 인도”는 서글픔을 자아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도 이것은 우리나라라고 생각하고 그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자신도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도를 위해 일할 것이다. 그 인도에는 상류계급도 하류계급도 없다. 그 인도에는 모두가 화목하게 산다.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세계 누구와도 평화롭게, 착취하는 일도 착취당하는 일도 없기에 군대는 가능한 소수로 둘 것이다. 대중의 이해를 위반하지 않는 한 외국인이나 국내인이나 차별 없이 존중될 것이다.” 간디의 꿈은 아직 우리의 꿈입니다.
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 원장인 김영호 인하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 대한 선생의 탄식을 들려줍니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얻은 좋은 인상의 하나는 그 인맥의 장관이다... 한편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또 한편 가슴속으로 흘러드는 눈물을 금치 못했다. 우리 인맥의 너무도 낮고 적음을 한해서 말이다... 오늘 우리같이 인물이 필요한 때는 없는데 인물이 없다. 특히 정치에서 그렇다. 왜 그런가? 재목은 숲에서만 난다면 인물은 인물에서만 난다. 전에 인물이 없었는데 지금 어디서 인물을 구하겠나?”

함 선생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큰 뜻을 펴지 못하고 억울하게 사형당한 인물들 (묘청, 최영, 임경업 등), 제거된 개혁파 인물들(조광조, 남이), 지조를 지킨 인물들(정몽주 등 사육신)의 전기집이나 같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입니다. 김구, 여운형, 조봉암, 장준하 등 해방 후 죽임을 당한 큰 인물들이 살아서 제 몫을 했더라면 오늘 이 나라가 달랐을 거라는 겁니다.

도서관 밖은 여전히 우울한 2월입니다. 간디는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그의 생일은 인도에선 국경일로 세계적으로는 ‘국제 비폭력의 날’로 기념되지만, 함석헌을 아는 젊은이는 이 나라 안에도 드뭅니다. 인물은 없고, 교육은 공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격차는 벌어지고, 모두가 화목한 우리나라는 꿈에서조차 그려보기 힘든데 저는 신발 위를 긁는 것 같은 글이나 쓰고 있습니다. 자괴감은 지대하나 비겁이 체질화되어, 집으로 갈 때는 가재울 뉴타운을 피해 가야지 생각하는데 선생의 목소리가 죽비 되어 머리를 내려칩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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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18:35 2009/02/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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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정치엔 관심이 없어도 역사에는 관심이 있으니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장면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랜만에 자정 넘은 시각 텔레비전 앞에 앉습니다. 영하의 새벽을 녹이는 취임식장의 열기 덕에 졸리던 눈이 오히려 살아납니다. 아직 취임식이 시작하기 전이라 당선 전후 오바마의 활동이 먼저 소개됩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통합 추구’입니다.

마침내 오바마가 미국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워싱턴 D.C.의 행복한 눈물 위에 몇 시간 전 뉴스에서 본 서울의 비극적 풍경이 겹쳐지며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그 첫 문단이 떠오릅니다. “제일 좋은 시대였고 제일 나쁜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였고 우둔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대였고 불신의 시대였다. 빛의 시대였고 암흑의 시대였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엔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엔 아무 것도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2백만 명의 빛나는 얼굴이 밝히는 미국 국회의사당 주변은 지혜와 믿음과 빛과 희망, “우리 앞엔 모든 것이 있’는 ‘제일 좋은 시대’를 보여줍니다. 반면에, 재개발을 반대하는 철거민 진압을 위해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3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서울 용산은 ‘우리 앞엔 아무 것도 없’고 우둔과 불신과 암흑과 절망만이 남은 ‘제일 나쁜 시대’의 모습입니다. 작년 설엔 국보 1호 숭례문이 숯덩이가 되더니 올 설을 앞두고는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여 6명의 귀한 목숨이 희생되었습니다.

오늘의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1년여 전 한국도 잠시 꿈꾸었습니다. 새 대통령이 내놓은 747공약(연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진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부추겨 표를 끌어 모으는데 기여한 ‘747’은 비아냥의 대상이 된 지 오랩니다. 747은 코스피지수 700대, 가구당 부채 4천만 원, 7대 빈곤국을 상징한다고 하더니, 요즘엔 7은 방송관련 7대 악법, 4는 4대강 살리기를 빙자한 대운하 추진, 마지막 7은 소위 버블7지역의 투기제한을 푸는 거라고 비꼬는 ‘2009년 판 747공약’이 인터넷에 떠돕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건 이 정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통합 대신 분열을 추구해왔기 때문입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고, 경선 당시의 정적들까지 아우르는 진용을 짠 오바마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자기편만 가지고 팀을 구성하고 나라 운용 첫 해 내내 내 사람 심기와 남의 편 솎아내기에 혈안이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삼는 편협함, 온라인 세상의 인기인과 경쟁을 벌이는 데서 나타나는 자신감의 결여, 무수한 국민이 겨울 가뭄으로 고생하는 나라에서 ‘불법 점거농성’을 해산한다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무신경, 생존권의 위협 앞에 농성하는 사람들을 잡겠다고 건물 옥상에 특공대를 투입하며 투신에 대비한 조처조차 하지 않은 사랑의 부족... 셀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사람들이 헌화하고 있다.


목숨을 잃은 다섯 명의 시민과 경찰관 한 명은 입고 있던 옷만 달랐을 뿐 모두 한 나라 국민입니다. 여섯 국민의 죽음은 다른 국민들에게 엄청난 분노와 부끄러움과 슬픔을 가져왔지만, 정부는 당황은 했을지언정 침통해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날 한승수 총리가 낭독한 발표문에는 깊은 슬픔이나 반성보다는 불법 점거농성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엄포가 선명합니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국무총리로서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불법 점거와 해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입니다. 불법폭력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느 누구에 의한 것이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앞장서서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거듭 명절인 설을 며칠 앞둔 이 시기에 이와 같이 불행한 일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한 총리의 ‘유감’이 가시처럼 눈을 찌릅니다. ‘죄송’도 아니고 ‘비통’도 아니고 유감이라니요? 국어성적만은 좋았던 저이지만 이해할 수가 없어 국어사전을 찾아봅니다. 遺憾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고, 有感은 ‘느끼는 바가 있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둘 중 어느 것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총리가 사용할 단어는 아닙니다.

비교하기조차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슬란드의 올라푸르 라그나르 그림손 (?lafur Ragnar Gr?msson) 대통령은 지난 달 22일 대통령궁 밖에서 경제위기의 책임을 물으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을 궁 안으로 불러들여 커피를 대접하고 얘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바로 전날엔 재무부에 편지를 보내 국민이 모두 경제위기로 고통스러우니 자신의 월급도 깎아달라고 요청했다 합니다. 총리가 정부의 수반인 나라여서 그림손은 실권 없는 대통령이라 해도 1996년 이래 4번 연임중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이루어졌다는 정부가 앞날이 막막한 철거민들의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법행위’ 비난에 목청을 돋우는 건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부는 부자만을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마침 텔레비전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역설합니다.

“부를 창출하고 자유를 신장시키는 시장의 힘은 막강하지만... 부유층만을 위하는 국가는 오래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경제의 성공은 단순히 국내총생산 규모가 아니라 번영의 혜택이 개인에게까지 미치고 의욕을 가진 구성원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국가적 역량에 의존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선적 배려가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공공의 선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이 방송을 보겠지, 오바마의 통합 노력을 보고 깨닫는 게 있겠지, 기대하다가 문득 불안해집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배우지 않고 취임식의 기독교적 의례만 배우려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새벽 3시, 오바마의 뒷모습을 보자 졸음이 쏟아집니다. 혹시 내일 아침 우리 정부가 그간의 옹졸함을 반성하며 통합을 위한 계획을 내놓을지도 몰라, 다시 여러 달 묵은 희망을 베고 잠자리에 듭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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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13:53 2009/01/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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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대박 또는 재앙



정부가 서울공항의 활주로 방향을 바꿔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롯데가 금명간 서울시의 건축허가를 받으면 2014년까지 서울 송파구 신천동 일대 8만7,182㎡ 부지에 연면적 60만7,849㎡, 높이 112층의 초고층 빌딩을 짓는다는 겁니다.

2007년 7월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초고층 건물을 건립할 경우 서울공항 비행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2롯데월드 신축계획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바뀌었지만 서울공항은 그때나 지금이나 공군기지이고 초고층 건물을 건립하면 비행 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수요일에 열린 조정위원회 실무위원회에서는 이 사업을 위해 서울공항 동편 활주로의 각도를 3도 변경하기로 하고 롯데와 공군에 활주로 변경관련 실무협의를 맡겼다고 합니다.


제2롯데월드 신축부지


아무리 부자와 기업을 편드는 기업가 출신 부자 대통령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사람들이 있고, 마침 경기도 나빠졌으니 좋은 일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개 기업에 엄청난 이익을 주기 위해 나라를 지키는 군사시설에 피해를 주는 건 옳지 않으며, 공군비행장 바로 옆에 555m 높이의 건물을 짓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향후 5년간 총 1조7,000억 원의 공사비와 연인원 250만 명의 건설인력을 투입하고 완공 후 고용인원만 2만3,000여명에 달할 테니 ‘잠실 뉴딜’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진수 한양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는 지난 달 조선일보에, 제2롯데월드가 추진되는 곳은 법적으로는 현행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성남기지는 전시 및 비상시 바로 전투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국가의 전략적 군기지라는 요지의 시론을 썼습니다. 그는 민간 여객기는 악천후에서 운항을 중지하면 되지만, 군용기들은 임무 완수를 위해 무리한 운항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순간적으로 기상이 악화될 경우 항공기가 비행 안전 구역을 벗어나기 쉽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실제 공식명칭인 ‘성남 공군기지’라는 말 대신 ‘서울공항’이라는 명칭만 쓰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새 고층빌딩의 안전을 입증하는 근거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민간 항공 관련 기관인 ICAO(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나 FAA(미국연방항공청) 출신 전문가들의 주장을 내세운다. 이런 경우 대부분 ‘서울공항’을 인천이나 김포처럼 정기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민간공항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성남 ‘기지’는 영어로 표현하면 ‘Air Base’이지 민간공항을 표현하는 ‘Air Port’가 아니다.”


제2롯데월드 조감도
롯데측은 제2롯데월드를 지으면 연간 150만 명의 해외관광객을 유치, 2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일 거라고 합니다.

지난 12월 30일엔 서울공항의 비행안전에 필요한 조처를 자기네 부담으로 마련하겠다고 서울시에 밝혔으며, 기존 롯데월드로 인해 주변에 심각한 교통체증 문제를 일으켜온 것을 감안, “서울시에 650억 원을 지원해 주변 교통체계를 정비하고, 1,000억 원을 들여 잠실4거리 지하광장 확장 및 대중교통 편의 확대 방안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활주로 각도를 변경하려면 1,000억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갈 수 있다는 예상 속에 국방부 관계자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롯데에서 모든 비용을 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활주로를 뜯어내고 다시 만드는 고난도 작업과 더불어 초고층 건물이 인근에 들어서는 데 따른 각종 첨단 비행 안전장비도 갖추어야 합니다. 서울시의 건축허가가 나오고 공군이 구체적인 비용을 산출하여 롯데에 제시했을 때 과연 롯데가 그 비용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지극히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비용문제가 아닙니다. 이 계획이 안고 있는 위험입니다. 언제든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군 기지 옆에 555m의 건물을 짓는다는 건 누가 보아도 위험한 일입니다. 롯데는 이 계획을 모든 것이 최선의 결과만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위에 세웠지만, 국민을 책임지는 정부는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를 경악하게 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대폭발참사와 같은 사건까지는 아니더라도, 악천후 속에서 움직이던 비행기가 바로 옆의 112층 건물에게 돌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계획이 ‘부동산투자의 지존’인 신격호 그룹회장에게 ‘대박’을 가져올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눈 먼 욕심과 크나큰 어리석음의 합작인 이 계획이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10년 전 바른 이유로 불허했던 계획을 갑자기 허용하기로 한 정부(政府)가 제 이름 속의 “바를 正”자를 알고는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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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09:23 2009/01/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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